카테고리 없음

예측이 가장 어려운 산업, 바이오: 10년간의 투자보고서를 다시 보다

purpureaworld 2025. 6. 9. 13:20

‘기술이 곧 성공’이 아닌 산업, 바이오

기술 산업에서는 "좋은 기술이 곧 좋은 비즈니스"라는 명제가 일정 부분 성립한다. 반도체의 미세공정이 진화하면 제품 경쟁력이 높아지고, 클라우드 성능이 올라가면 고객 충성도와 ARPU(가입자당 평균 매출)가 늘어난다. 하지만 바이오 산업은 다르다. 기술이 탁월하다고 해도 시장에서 성공하지 못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생명’과 ‘시간’이라는 변수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바이오 산업에 대해 작성된 투자 보고서 수백 건을 들여다보면, 동일한 패턴이 반복된다. 기술적 성취에 대한 찬사, 긍정적인 임상 1·2상 결과, 높은 시장 잠재력에 대한 강조. 그러나 이후 많은 기업들이 임상 3상에서 실패하거나, 예상보다 긴 규제 승인 지연을 겪으며 투자자들의 기대를 저버렸다.

이 글에서는 다음 세 가지 관점에서 바이오 산업이 왜 예측하기 어려운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1. 임상 3상이라는 예측 불가능의 벽
  2. FDA 승인 과정의 불확실성과 투자 리스크
  3. 유전자 치료 기술의 상업화 한계와 수익 모델 부재

바이오산업


1: 임상 3상이라는 예측 불가능의 벽

바이오 산업에서 가장 큰 난관은 단연 **임상 3상(Phase III)**이다. 1상과 2상을 통과한 신약 후보가 최종적으로 시장에 도달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마지막 문턱이다. 문제는 이 3상이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과 ‘확률’의 영역이라는 점이다.

실제 사례: 셀트리온 vs 바이오젠

예를 들어 셀트리온의 레미케이드 바이오시밀러(램시마)는 다수의 글로벌 3상 시험을 성공적으로 통과하면서 글로벌 허가를 빠르게 획득했고, 수익 모델을 안정적으로 구축했다. 반면 바이오젠은 알츠하이머 치료제인 아두카누맙(aducanumab)의 3상에서 통계적 유의성 부족 문제로 임상 데이터를 수정 제출했으며, 이로 인해 FDA 승인을 받긴 했지만 이후 시장 혼란을 겪었다.

3상에서 실패하면 이전 투자금이 모두 증발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는 기술이 아니라 임상 설계, 통계적 해석, 대상군의 반응 등 비기술적 요소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핵심 포인트:

  • 투자 보고서에서는 종종 1·2상 결과를 바탕으로 낙관적인 예측을 하지만, 3상은 완전히 다른 게임이다.
  • 실패 확률은 평균 40~60%에 달하며, 시간당 기회비용이 크다.

2: FDA 승인 지연과 정책 리스크

2014년 투자 보고서 중 다수는 ‘미국 시장 진출’을 바이오 기업의 핵심 모멘텀으로 언급했다. 특히 미국 FDA(식품의약국)의 신속 심사(fast track), 우선심사(priority review) 제도를 통해 조기 상업화를 노리는 전략이 다수 제시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복잡했다.

FDA의 규제는 점점 더 보수화되고 있으며, 특히 장기 안전성 데이터 부족이나 환자군의 다양성 결여는 승인을 지연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 뿐만 아니라 미국 내 정치 환경 변화(예: 약가 규제 정책, 바이든 행정부의 IRA 법안 등)는 기업의 예상 수익성을 크게 훼손한다.

실제 사례: 모더나 vs 이노비오

모더나는 mRNA 기반 백신 기술을 앞세워 팬데믹 속에서 성공적인 상업화를 이뤘지만, 이는 비상상황 하에서 규제 유예 및 자금 지원이라는 예외적 환경 덕이었다. 반면 같은 시기 기대를 모았던 이노비오는 DNA 기반 백신 기술로 임상 2상까진 진전했지만, FDA의 추가 요구와 데이터 미흡 등으로 인해 상업화에 실패했다.

핵심 포인트:

  • 규제 환경은 기술의 성공 여부 못지않게 투자 성공에 결정적인 변수다.
  • 승인 지연은 자금 소진을 초래하고, 스타트업일수록 치명적이다.

3: 유전자 치료 기술의 수익화 한계

2013~2015년 투자 보고서는 앞다투어 유전자 치료 기술의 ‘혁신성’과 ‘시장 잠재력’을 강조했다. 특히 CRISPR, CAR-T, RNA 치료제 등이 소개되며 차세대 먹거리로 부각되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이들 기술이 상업적으로 얼마나 자리 잡았는지를 보면, 현실은 다르다.

실제 사례: 크리스퍼 테라퓨틱스 vs 길리어드

크리스퍼 테라퓨틱스는 유전자 편집 기술의 대표주자로 큰 주목을 받았지만, 상업적으로 의미 있는 매출을 내는 데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반면, 길리어드는 CAR-T 기술을 인수하여 혈액암 치료제 시장에서 일정 부분 매출을 내고 있지만, 고비용과 생산 공정의 복잡성으로 인해 대중적 치료법으로 확장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유전자 치료제는 치료 대상이 희귀질환이거나 극소수 환자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아, 단일 환자당 치료비용은 수십만~수백만 달러에 이른다. 이는 보험체계와 상업화 모델 양쪽에서 큰 제약을 의미한다.

핵심 포인트:

  • 유전자 기술은 기술적 진보와 상업적 확장의 시간 차이가 크다.
  • 치료 단가가 높아 대중화에 한계가 있으며, 이는 투자 회수에 직접적 영향을 준다.

 바이오 산업에서 투자란 ‘확률 게임’이 아닌 ‘지연된 확신’의 영역

기술만으로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는 산업, 그것이 바이오다. 기술은 시장을 선도할 가능성을 제공하지만, 시간과 사람, 규제라는 세 가지 불확실성을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이는 투자자에게 있어 단기 수익을 노리는 투자보다는, 확신을 가진 장기적 동행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뜻한다.

10년 전 바이오 투자 보고서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누가 맞았는가'가 아니라 '왜 틀릴 수밖에 없었는가'다. 이 통찰은 앞으로 바이오 산업에 투자할 때 리스크를 관리하고, 실패를 줄이는 데 핵심적인 참고점이 될 것이다.


다음 예고: 생명과 확률의 경계에서—10년 전 바이오 투자보고서를 넘어서

다음 편에서는 투자자들이 가장 어렵게 느끼는 영역 중 하나인 바이오 산업을 넘어, AI 생태계 이후 펼쳐질 디지털 주권 경쟁과 함께, 기술-규제-플랫폼 간 복잡한 관계에 대해 다뤄본다. 기술 예측이 어려운 시대,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봐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성이다.